Place

산서면

용전마을 전경 용전마을
괴로울마을 전경 괴로울마을
매암수마을 전경 매암수마을
마하마을 전경 마하마을
능실마을 전경 능실마을
오성마을 전경 오성마을

건지리

월호(月呼)마을

방죽굴: 장수와 산서 간 월호 입구에서 동화리 방향으로 가다 새까끔을 지나 죄회전하여 회봉굴 들어가는 길 주변 골짜기로 진주 강씨 재실이 있다.

자라바우: 봉정에서 이룡교 가기 전 150m 왼쪽에 있는 자라 모양의 바위로 지금은 도로가 났지만 예전에는 도로 아래로 내가 흘러 물 위에 자라가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전(眞田)마을

텃골: 마을 동쪽에 있는 고바우들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터를 잡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터곡’이 ‘터골’, ‘텃골’로 변했다.

고바우,고바우모퉁이,곰바우들: 고바우는 진전에서 진전보 가는 도중 시냇가에 서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바우가 있는 부근의 산모퉁이를 고바우들이라고 한다. 원래는 고바우로 불렀으나 요즘은 발음하기 쉬운 곰바우라고도 부른다.

선님터: 마을 입구 좌측 산과 산 아래 밭이 있는 곳으로 먼저 들어와 집을 지으면 성공을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화리

능곡(陵谷)마을

불겅바우: 구생듯들 북쪽 지금의 능곡제 안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로 인하여 붙여진 들이름이다.

범바위: 아래뜸에서 윗뜸 가는 길에서 북서쪽을 보면 묘가 하난 보이는데 묘 위쪽에 범모양의 바위로 흥골에 있다.

생이바우: 각시점골 오른쪽 산등성이에 상여처럼 생긴 바위로 위, 아래뜸 길에서 보인다.

차일암(遮日岩): 능곡마을에 있는 바위로 십여 평의 넓은 바위에 네 귀를 바친 듯하다. 아래를 바쳐 하늘을 가린 듯하다고 차일암이라 부른다.

동촌(桐村)마을

명계골: 동촌 마을회관 왼쪽에 내가 형성된 골짜기로 둥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귀꼬리날: 용두봉 두 개의 봉우리 중 왼쪽 봉우리 아래에 쥐꼬리 모양으로 생긴 산등성이다. 두 개의 골짜기 사이에 솟은 날의 등이 쥐꼬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곳에 전주 이씨의 선산이 있다.

최변골: 동촌마을 동쪽으로 난 골짜기로 시체를 바로 매장하지 않고 관위에 볏집을 이어서 물이 들지 않게 하여 육탈을 하게 만드는 것을 빈이라 하는데 발음이 변하여 최변골이라 부른다.

머웃골잎들: 쌍방우 거리 위쪽에서 먹골 앞까지 펼쳐진 큰 골짜기 들 로 오른쪽은 전주 최씨들의 산이고 왼쪽은 진등이란 산등성이가 있다.

등석(等石)마을

강갓들: 예전에 진주 강씨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던 들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웃강갓들과 아랫강갓들로 나눈다. 웃강갓들은 터미널에서 주유소 남서쪽으로 있는 들이고 웃강갓들은 북동쪽에 있는 들로 등석 주민들은 웃강갓들을 주로 경작한다.

구생잇들: 산서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들로 일설에 의하면 아홉 정승이 난다 하여 구승들이라 했는데 구생잇들로 부른다.

마하리

원흥(元興)마을

송산모랭이: 산서와 장수 경계인 대성공원 표석에 1.1km 지점으로 산불을 감시하는 초소가 있는 넓은 땅이 있으며 모퉁이 산이 송씨들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강바우: 원흥 동쪽 복골샘 아래 있는 바위로 모양이 요강처럼 둥글게 생겨서 붙여진이름이다.

평촌(坪村)마을

귀염나무골: 서마지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고염나무가 많아서 귀염나무골이라 했다. 귀염나무는 고염나무의 사투리이다.

미삿등: 능성 구씨 선산이 솔안(率雁)이라는 명당자리인데 기러기가 나는 형국으로 되어있다. 기러기는 뱀을 잡아먹기 위해 솔안 바깥쪽 산등성이가 뱀꼬리와 같은 모양으로 올라가는 날이라 해서 미사등이라 한다.

용정지(龍井地): 귀염나무골과 서마지기골 사이에 있는 찬샘으로 용이 먹는 샘이라 하여 붙여진 여름이다. 옛날 이 샘물로 목욕을 하면 여름에 땀띠가 없어진다고 했다.

도평: 되재라고 불렸던 곳으로 되재는 되놈이 우리나라를 침범했을 때 넘던 고개라 해서 불려진 이름이다. 되놈이란 몽고 군인들을 일컫는 상스런 말인데 고려 때 몽고가 우리 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넘 던 고개와 그 곳에 들어선 마을을 일컬어 되재라 불렀다. 도평이란 이름은 해방 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도로변에 있고 평촌에 딸린 마을이라 하여 도평이라 했다.

백운리

구창(九倉)마을

방해물터: 홍지동 뒷산 방아를 찧는 나무를 구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바우: 갈미봉 밑 부분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어떤 장군이 밟아서 바위 위에 발자국 2개가 남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월(新月)마을

까재눈깔: 서당골 하단부에 있는 골짜기에 언덕으로 모양이 가재 눈처럼 툭 솟아올라 붙여진 이름이다.

고듬치재: 고동치혈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고듬치재로 바뀌어 불린 듯 하다.

달랑고개: 소나무 숲 있는 곳에 방울명당이 있는데 모양이 방울처럼 오똑하게 생겼다. 방울 명당이 있으므로 방울 소리를 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최빈골: 불무골 하단부 골짜기로 최빈이란 움막을 지어 놓고 시체를 그대로 모신 후 상주가 3년을 기거한 후에 육탈이 되면 묘를 쓰는 것을 말하며 최빈골 움막이 있었다 하여 최빈골이라 한다. 표주말로 초진빈(草殯)이다.

방앗보: 수월장 옆에 있는 다리에서 50여 m 위에 있는 보로 예전에 물레방앗간이 회관 광장에 있어서 거리가 가까워 붙여진 이름이다. ‘물레방앗보’라고도 부르고 ‘방앗실보’라고도 한다.

봉서리

봉서(鳳捿)마을

방갓재: 옆에 공동 묘지가 있는데 방갓을 쓴 귀신이 나왔다는 풍문이 전해온다. 또 하나의 방갓재가 있는데 고산마을에서 남동쪽으로 넘어 다니는 재를 말한다.

비석양지: 신기 삼거리에서 성저동을 지나기 전 도로 좌측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비석처럼 반듯하고 양지바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솔탯재: 고산마을에서 방갓재를 넘어 가는 도중 200m 지점에 있는 재로 큰 소나무가 있어서 일꾼들이 지게를 풀어놓고 쉬어 가던 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골: 옥녀가 비단을 짠다는 옥녀직금 풍수에 의해 지어진 이름으로 고산마을 서쪽에 1km 지점에 있다. 척동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진등: 안잣골 북서쪽에서 임실군 지사면 가는 길에 있는 산등성이로 길이가 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계리

서원(書院)마을

금바장: 소목골 오른쪽 골짜기로 와우형에 의해 생긴 곳으로 지계의 바작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한다.

차독모랭이: 서원 마을회관에서 보아 소목골 왼쪽 둥근산 아랫부분을 이르는 말로 차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곡: 사계리 지우정마을에서 하월리 신등까지 하천 주변에 있는 사계리 서원과 하월리 신등, 창촌마을을 한꺼번에 부르는 이름이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 달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다리실이라고도 한다.

왕곡(汪谷)마을

괴등: 사계재 남쪽 복묘농서의 혈이 있다는 등성이로 고양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림: 왕곡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학의 혈이 있다고 하며 두루봉이라고도 부른다.

오리밭: 사계봉에서 내려오는 능선 모양이 오리가 헤엄치면서 다니는 것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골: 핏밧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상리

당가(唐佳)마을

도둑골: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도둑이 많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래댓들: 마을 앞 다리에서 사창정 가는 도로 남쪽에 있는 들로 모래가 많은 논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집앞들: 마을 앞에 있는 들로 마을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육원들: 마을 서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 그곳에서 여섯 명의 원님이 나올 만할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숲거래, 숲거랫보: 마을 앞 다리 건너 남쪽으로 난 길 옆에 있는 논으로 숲이 우거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숲거랫보는 숲거랫들에 물을 대기 위한 보다.

사창(社倉)마을

개금밭골: 마을 웃뜸 왼쪽으로 난 당너머 고개를 오르는 길 왼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금나무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개금밭굴이라고도 한다, 개금은 개암나무의 열매인 깨금의 사투리이다.

당너매: 웃뜸에서 지사면 영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그 부군에 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적골: 해개뜸 북동쪽 언덕에 북서쪽으로 난 산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오정골 가기 전 왼쪽 아래로 보이는 골짜기로 사녁굴이라고도 한다. 이 곳은 도적이 숨기에 좋은 만큼 깊고 숲이 우거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녁골과 조상걸로 통한다.

모개나무골: 사창마을에서 하월리 신등 가는 시멘트 도로 윈쪽에 있는 골짜기로 사창마을 동쪽에 있는 동녘이라 부르는 곳을 가기 전 왼쪽에 보이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큰 모과나무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허굴: 마을 회관에서 정남쪽 보았을 때 왼쪽에 있는 골짜기로 범이 나타날 만큼 숲이 우거졌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버머굴이라고도 부르며 지금은 경지정리로 인해 골짜기 일부가 논으로 바뀌어 예전만큼 골짜기가 깊지 않다.

지름당고개: 마을 동쪽 산 우측에 지사면 영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골짜기로 찬물이 계속 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름댕이 고개, 지름쟁이 고새라고도 부른다.

가르댓들, 가르댓보: 사창 서쪽에 있는 가르대라는 마을쪽에 있어서 가르댓들이라 부른다. 가르댓보는 현재 사창정 앞 냇가에 있으며 지금도 가르댓보라 한다.

금논들, 금논보: 마을 앞 모정에서 가동마을 가는 길 북쪽에 있는 논으로 예전에 사금을 채취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둥그배비: 서당논들에 있었던 9마지기 논으로 모양이 둥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돼지배미: 아랫모래대와 웃모래대를 가르는 물길 남쪽 길가에 있었던 3마지기 논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 1마리와 이 논을 바꿨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모새배미, 모새배밋보: 중보걸에서 모래대 가는 길과 숲거래 가는 농로 갈림길 사이에 있었던 논으로 모래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아들, 방아들잇보: 봉서리와 하월리에서 내려오는 하천이 모이는 곳 아래에 있었던 논으로 그 주위에 물래방앗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아들잇보는 봉서리와 하월리 하천이 만나는 곳에서 봉서리쪽 상류 500여 m 위치에 있었다.

박아매비: 봉서리와 하월리쪽 하천 사이에 있었던 30여 마지기의 논으로 하철사이에 위치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방죽안: 마을 웃뜸 왼쪽으로 난 당너매 고개를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로 200여 년 전 큰 방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정배미: 섬배미 남쪽에 있었던 9마지기 논으로 정사각형 모양의 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살고지: 원답 북서쪽에 있는 논으로 화살대처럼 길게 뻗어있는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섬배미: 조상걸 남쪽에 있었던 6마지기 한 다랑이 논으로 논 안에 섬모양의 흙무더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시암, 참시암들, 참시암보: 사창정 정남쪽 다리 건너 작골 가는 길 좌우에 있는 들로 참사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시암은 사철 내내 냉수가 흘러나오는 샘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경지정리 후에도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신창리

대창(大昌)마을

감동메: 대창에서 영천 사이 오른쪽 들판에 조그마한 산으로 감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감바우라고도 한다.

비석들: 대창교에서 영천 쪽으로 500m 가다 우회전하여 가면 100여 m 쯤에 수로가 있는데 길좌측과 북쪽, 왼쪽 산억덕 무덤에 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방죽: 대창에서 오산 가는 길을따라 다리 왼쪽 오산에서 당그래봉이라 부르는 산 아래 있는 방죽이다. 예전에 연꽃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고 방죽만 있다.

학당뜸: 대창에서 오산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덕(新德)마을

구산: 마을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구씨들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 신덕마을 뒤 쪽에 있는 산으로 주위보다 약간 높아 매를 이용해서꿩을 잡기에 좋은 위치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시동메: 마을 앞에 보이는 세 봉우리 중 왼쪽에 있는 봉우리로 산 중턱 작은 동굴에 여우가 살ᄋᆞᆻ던 동굴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최산: 삼꿋모퉁이 남쪽 골짜기 좌우에 있는 산으로 최씨들 소유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산: 삼꿋모퉁이 서쪽에 있는 산으로 하씨들 소유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억들: 마을회관에서 시장마을 가는 길 좌, 우측에 있는 들로 집터를 잘 잡으면 구억석을 얻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치배미: 우렁골에 있었던 논으로 갈치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꿋모퉁이: 신덕마을 남쪽에 있는 모퉁이로 예전에 길쌈을 하기 위해 삼을 익혔던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닭논: 우렁골에 있었던 논으로 장닭 한 마리와 바꿧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쌍계리

마평(馬坪)마을

삼밭골: 마평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삼밭이 있어서 삼밭골이라고 하고 요즘은 선바웃골 이라고도 부르는데 바위가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사번덕: 누런 뱀이 뻗쳐 있는 형국의 산등성이로 마평 북쪽, 마평과 오성리 사이이다.

고리안: 작은어옹골과 큰어옹골을 따라 산을 오르면 산 정상 부근에 배 고리를 매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유평: 황사등 서쪽에 있는 들로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집이 있는 형상인 앵소유지(鶯巢柳枝)의 명당자리로 묘가 많이 있다.

뒷시암거리: 마평 뒤쪽에 세 집이 모여 사는 곳으로 약수로 이용할 만큼 좋은 샘이 있어 부르는 이름이다.

병풍바우: 선밧골 동쪽에 있는 층을 이룬 바위로 병처럼 생겼다 한다.

양신(陽新)마을

연두고미: 제비가 꼬리 돌아본다는 뜻의 명당으로 청주 한씨 영모재라는 재실이 있다.

부랑답: 평촌마을에서 사계삼거리 언덕 올라 동족에 있는 들로 물이 귀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경지정리 후 사라졌다.

오산리

초장(草庄)마을

초장마을: 마을 형상이 초중반사(草中盤巳)형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목재: 초장마을 오산제 북쪽 숙운동에 있는 고개로, 중간에 사람들이 마실수 있는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솔무데기: 초장마을 입구 좌우로 예전에 소나무 숲이 울창했던 곳을 부르는 이름으로 그 숲이 없어지고 지금은 논·밭과 조탑 2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조탑은 소나무 숲을 대신하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다.

쇠바탕이재: 초장 쌍방죽 북서쪽에 있는 재로 예전에는 나뭇길이었으나 지금은 이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소를 많이 매어 놓았던 자리이다.

시암재: 초장 방죽 정 북쪽에 미륵암이 있는 골짜기로 중턱에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미륵암에서 이 샘을 식수로 이용한다.

아침재: 초장마을에서 성수면 왕방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봉산 아래에 있다. 오봉산에는 오봉귀혈이 있는데 봉은 아침에 운다는 뜻에서 아침재라 하고 태조 이성계가 성수산에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아침에 올라갔다고도 전해진다.

하오(下五)마을

당그래봉: 하오 남쪽에 있는 안산으로 당그래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 하오 동쪽에 있는 산으로 복치(伏雉)혈이 있다 한다.

매산: 하오 서쪽에 있는 산으로 매화낙지(梅花烙地)혈이 있다 한다.

거문들: 하오에서 암가 쪽으로 매산 고개를 넘어 왼쪽으로 있는 마을로 지형이 거문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죽들: 하오 남서쪽에 있는 들로 방죽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성리

강치(江峙)마을

신계골: 계복골 아랫부분에 있는 골짜기로 새벽에 달을 보고 운다는 신계창월의 명당이 있는 곳이다.

시루봉: 개치 북쪽에 있는 산으로 비행기재와 연결이 되며 봉우리가 시루를 엎어놓은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산밭골: 작은멧골 위에 있는 골짜기로 돌이 조산처럼 군데군데 쌓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젱이: 강정마을의 다른 이름으로 마을회관 남쪽에 있으며 강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을 생각할 때 강에 해당한다.

배치: 개치마을의 다른 이름으로 마을회관 북쪽에 있으며 강에 떠 있는 배의 형국을 생각할 때 행주(行舟)에 해당한다.

벌명당: 개치 고개 위 길가에 있는 벌의 혈이 있는 명당으로 조선 고종 때 선비 송기풍의 묘가 있다.

홍문거리: 강치 앞에 있는 길로 비가 오면 흙탕물이 흘러 홍문거리라 했다.

방화(訪花)마을

건지산들: 방화마을에서 마하리 원흥삼거리로 가기 위해 넘는 덕구개목이란 고개로 연결된 도로 왼쪽으로 펼쳐진 들이다. 마을 앞에 있는 건지산과 인접하여 들이 펼쳐졌기 때문에 건지산의 이름을 따서 건지산들이라 부르고 있다.

가매솥골: 오성제 가는 언덕길을 따라 가다가 관정이 있는 건물을 지나기 전에 도로에서 보았을 때 오성제 너머로 보이는 샛골 왼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가마솥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솥골’이라고도 한다.

굿깻들: 방화마을에서 쌍계리 양촌마을로 가는 도로 오른쪽에 있는 들로 성계교를 건너기 전까지 펼쳐지고 200여 마지기의 논이 있다. 정확한 표기가 없어 이렇게 표기했으나 우리말에 섞은 물의 바닥에 가라앉은 개흙을 ‘굴개’라 하고 곤죽이 된 진흙이나 개흙이 많이 괸 곳을 ‘수렁’이라 하는데 마을에 거주하시는 분이 수렁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 것으로 볼 때 ‘굴개논’의 발음이 변형되어 부르기 편한 ‘굿깻들’이라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룡리

이룡(二龍)마을

신방골: 우렁골 방죽 동편 골짜기와 들판으로 10여 마지기의 논이 있다. 지형상 이룡 사계 중간 지형으로 한적하여 무서운 곳으로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오리배미: 터논들에 있었던 논으로 가오리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각시배미: 약촌 앞에 있었던 논으로 이 논을 주고 소실 여자를 데려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나뭇들: 문정짓들 동쪽에 있는 들로 감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레실: 청룡모퉁이 북쪽 1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논으로 습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깽변들: ‘강변’이라는 말이 세져서 ‘깽변’으로 발음하여 깽변들이라 불린다.

묵논: 문정짓봇들에 있는 논으로 땅이 거칠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경지정리후 사라졌다.

용평: 오룡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날 모양이 뱀이 꼬리를 돌아보는 것과 같은 황사고미(黃巳顧尾)의 형국이라 한다. 황사(黃巳)를 용으로 생각하여 부르는 마을 이름이다.

정자나뭇거리: 이룡리 당산나무 옆 번암, 보절쪽으로 갈리는 길 부근이다. 지금으로부터 6,70년 전에 떼를 올려서 지은 집이 있었기 때문에 ‘뗏집거리’라고도 불렸고 정지나뭇거리라고도 부른다.

청석배미: 감나뭇들과 문정짓들 접경지역으로 쟁기질을 하면 새파란 돌(청석)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콘논들: 오룡 북쪽 하천에 인접한 건답이므로 가뭄이 들었을 때는 콩을 심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탑거리: 대숲거리 서쪽에 펼쳐진 30여 마지기의 들로 예전에는 쌍탑 두 개가 있었는데 마을의 재앙을 막을 목적으로 쌓아 수구신 역할을 했다.

신등(新燈)마을

우턱골: 등동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소머리 모양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점터: 우턱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옹기 그릇을 굽던 가마터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멍애배미: 방고갯들 가운데 있는 논으로 소의 멍에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고개: 등동마을 앞에 있는 들로 반쯤 되는 고개에 있는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밭이었으나 경지정리 후에는 논으로 이용하여 방고개라고도 부른다.

다리실: 하월리와 사계리 서원까지 걸쳐 있는 마을을 총칭하는 말이다.

새몰 : 신등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황새나무거리: 신등마을 서쪽 산언덕으로 황새가 많이 찾아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많은 황새들이 찾아와서 나무가 죽었으나 요즘은 그 수가 많이 줄어 간혹 몇 마리 정도가 찾아온다고 한다.

창촌(倉村)마을

엄남등: 골몰에서 작은멧골 넘어가는 언덕으로 예전에 엄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군 보호림인 노송 2그루가 있다.

솔때배기: 본전배미 동쪽에 있는 논으로 이조 고종 때 다리실에 살았던 진사 정열상의 솔대가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학선리

구암(龜岩)마을

목밴날: 마을회관 북동쪽에 있는 산줄기로 일제 시대 때 풍수설에 의해 중간 부분이 잘려 나갔다.

골논: 마을 입구 고목을 지나 도로 왼쪽에 서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안에 있는 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답: 잿들 내에 있는 압곡마을 북서쪽 5마지기 정도의 논으로 그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물 걱정없이 지을 수 있는 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쇠종골: 마을 뒤에 펼쳐진 70여 마지기의 들로 옛날에 민가 뒤에서 쇠종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예전에 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남생이바우: 빈터네 바위가 무리지어 있는데 그 밑 개울 속에 남생이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남생이바우 또는 남성바우라고도 한다. 구암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동고(東皐)마을

구시재: 상동고 북쪽에서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에 대판으로 가는 고개로 지형이 비둘기 집의 형국으로 되어있다.

박달재: 하동고 북동쪽에서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 대판으로 가는 고개로 큰 박달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수골: 동고마을 입구 들어가는 도로 왼쪽 산등성이 넘어 있는 50여 마지기의 들로 그곳을 파면 많은 물이 나오는 원수(原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압곡(鴨谷)마을

압곡마을: 마을 형국이 오리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시재: 압곡에서 상동고를 지나 성수면 대판리로 이어진 재로 비둘기집 모양이다.

참시암골: 궁메 서편 도로 남쪽 골짜기로 샘이 솟는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뚜부배미: 무량제 밑에 800여 평 되는 논으로 두부와 바꾸어 먹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으나 경지정리로 사라졌다.

채선배미: 물이 귀하여 채소를 지ᄋᅠᆻ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영씨바우: 압곡마을 서편 길에서 5m쯤 떨어진 논 안에 있는 바위로 1950년대 이전에 목화농사를 지어 목화씨를 깨던 바위라 하여 미영씨 바우라 이름하였다.

용전(龍田)마을

부처골: 용전마을 입구에서 보았을 때 마을 동쪽 끝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예전에 절이 있었다 전해지고 돌부처 3개가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