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번암면

복성마을 전경 복성마을
노단마을 전경 노단마을
원촌마을 전경 원촌마을

교동리

금천(校村)마을

조리봉: 마을의 앞산에 있는 봉우리로 산 밑에는 섬진강의 상류인 내가 흐르고 동촌 앞들에 곡식이 있으니 물(섬진강 상류의 시내)에서 곡식(동촌 앞들의 농작물)을 건져 올리는 조리(조루) 같다하여 조리봉이라 했다.

주벅봉: 동촌마을 앞 능선의 봉우리로 솥에서 그릇에 밥을 퍼 담는 주벅(주걱)과 흡사한 모양이라 이름 지었다.

홍두깨날: 마을 앞산에 있는 날망(능선)으로 삼베나 무명 등을 감아 다듬는 홍두깨와 같은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쇠막골: 옛날에 소의 전염성 병이 생겨서 유행하게 되면 병을 피하여 이 골짜기 안에서 소를 길렀다 하며 쇠막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상교(上橋)마을

석산봉: 마을 앞쪽 이문재 부근의 봉우리로 곱돌이 나오는 봉우리라 하여 석산이 형성된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륵배기: 마을 진입로 수분령에서 마을 쪽으로 70m지점의 도로 하단부의 밭에 붙여진 이름으로 밭 가운데 미륵불이 있었다고 하며 미륵불은 “도난당했다” 또는 “누군가 팔았다.”등의 이야기가 있으며 미륵불이 있던 그 자리에 아주 옛날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입증될 만한 사료가 없다.

하교(下橋)마을

장산: 마을 앞에 건너다보이는 산으로 장씨산 이라 하여 장산이라 불리었다. 장산에 풍수지리학적으로 가재혈이라는 명당이 있고 그 상단에 작살봉, 그 밑에는 어급인 소류지가 형성되어

있다.

국포리

국포(菊圃)마을

국포리의 원 이름은 구포(龜浦)였는데 국포로 잘못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구포라 불리는 이유는 원북만을 중심을 마을 앞 원평뜰은 바다요, 마을은 포구이고 마을 우측 능선은 제방 둑으로 보며 마을 가옥들은 포구에 정박 중인 배와 같으렴 마을의 좌측 능선은 거북이 모양으로 거북이가 포구에서 물을 먹는 형상이라 구포음수(龜浦飮水)라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오는데 이런 이유로 본시 구포가 지금의 국포로 잘못 전 해지고 있다고 한다.

성영골: 성녕이라는 이름은 옛날 대장간을 이 지방에서는 성녕간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풀무시설을 갖춘 성녕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장(倒庄)마을

차일봉: 마을 뒷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매봉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밭골 뒤쪽 최고봉으로 표고 800여m정도이며 봉우리의 형체가 흡사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설치하는 차일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학산: 장남저수지 제방의 서쪽 끝 도로 옆에 우뚝 솟은 산으로 현인이 독서를 하는 형이라고 해서 현학산 이라고 불리는데 풍수학 상 괘 등혈 이라는 혈이 있고 그곳에 묘가 있다.

호가막골: 마을에서 보면 번암 산서 간 도로 건너편 앞쪽으로 장남저수지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에 있는 암석에 굴곡이 많아 호랑이가 좋아서 쉬고 있는 호랑이가 눈에 띈 적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북(元北)마을

매봉산: 새터골 맨 상류 봉우리를 매봉이라 하여 매봉산이라 부르는데 산의 모양이 날아오르는 매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단리

노단(魯壇)마을

외밭골: 노단의 맨 아래쪽 시목동(감나무골개) 바로 아래쪽 골짜기로 과거에 외밭이 있었다 하여 외밭골이라 하며 노단 뒷산에 그 유명했던 번암 금광이 있었던 골짜기이다.

베루골: 베루하 함은 회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옛적 여러 사람이 논에 김매기를 할 때 대열이 균형을 맞추면서 회전하며“베루야! 돌아라!” 하였던 것을 상기해 보아도 베루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으며 능선이 길게 나와 있어 심하게 돌아다녔던 모퉁이라는 뜻이다.

반계정: 절벽에 암반과 기안괴석사이로 옥수가 흐르는 시냇물을 상징하는 뜻으로 반계정(磻溪亭)이라 하였다.

하노단(下魯壇)마을

고무골(곰골): 웃바랑골과 아랫바랑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더러는 곰골이라고도 부른다.

문암바우: 마을 앞 문암봉 정상에 있는 바위로 다른 이름으로 옥동바위라고도 하고 또는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흔들바위라는 이름은 바위의 균형이 묘하여 열 사람이건 또는 한사람이건 밀어 흔들 수가 있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다

두견(斗肩)마을

아홉새다리골: 감투봉의 한 골짜기로 동화리 하동의 머골에서 아영면으로 통하는 다리재가 있으며 풍수설에 의하면 구조치 즉 9마리의 새가 날아드는 명당이 있다하요 붙여진 이름이다.

애금박골: “애 업은 박위 골”이 변하여진 이름이며 애기를 업고 있는 형상의 애기 업은 바위가 있는 골짜기이다.

타래골: 두동마을 남쪽 골짜기로 “탈안골”이 변형된 이름이다. 말이 안장을 벗는다(탈안)는 명당이 있다한다.

꺼멍바위: 견천마을과 두동마을의 사이에 있는 목넘어 남쪽 끝에 있는 바위로서 색깔이 검은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고 아이들이 바윙에 올라 번암면을 굽어보고 기상을 키우며 놀던 곳이다.

시동강(市東崗)마을

걸음쏘: 백운천쪽의 강수량이 많아 홍수량이 많으면 침식작용에 의해 용림천쪽에 쏘가 형성되고 용림천 쪽 강우량이 더 많으면 아래쪽에 쏘가 형성되기 때문에 흡사 쏘가 걸어 다니는 것 같다하여 걸음쏘라 했고다.

종대거리: 6.25한국 동란 전후 비상시 경보용 종루가 이 자리에 있었다. 종루를 통나무 원목으로 세웠는데 사람들은 종대라 불렀고 종대가 있다 하여 종대거리라 불렀다.

신기(新基)마을

되골: 두동마을과 신기마을의 중간쯤에 있는 골짜기로 됫박형국이라 붙은 이름이라 하며 되골과 말골 섬들 등의 지명은 곡물의 양의 단원인 되,말,섬 등과 연계되어 있다.

논곡리

논곡(論谷)마을

거라시골: 논곡마을의 최남단 유정과 접해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거지들이 모여서 오늘은 어디로 가면 동냥을 많이 할 수 있을까 의논하던 골짜기라 하며 이곳에 경작지는 없다.

갈불: 산 모양이 갓ㅇㄹ 덮은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며 갈불앞에 있는 들을 갈불들이라고 부르고 갈불들은 논고마을의 남쪽에 있는 비교적 넒은 고원을 말하며 이 계곡에는 갖가지 이름의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있어 그 이름은 남쪽에서부터 마을 쪽을 향하여 순서대로 기술하기로 한다.

개금바탕: 풍수지라학 상 그 혈의 모양이 가야금 같다 하여 개금바탕이라하며 옛날 초동들이 땔감이난 퇴비용 풀을 해 나를 때 쉴 수 있는 바탕이라고도 불렀다.

바랑골:바랑골에는 큰바랑골과 작은바랑골이 있는데 스님들이 매고 다니는 바랑모양의 혈이 있다 하여 바랑골이라고 하고 일설에는 복치혈이 있어 망응동이라고도 불리었다 한다.

투구봉: 봉우리가 흡사 투구모양으로 생겨서 투구봉이라 하는데 성지골과 옷골 중간지점 최상단 봉우리를 말한다.

새질재: 새길재의 다른 이름이며 노곡에서 주암 마을로 넘어가는 재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조도치(鳥道峙)라고도 부른다.

성암(星岩)마을

호랑이콧중뱅이 : 책바위골에서 터골 쪽으로 지형이 호랑이 코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론리

원대론(大論)마을

솔따베기: 큰까끔 바로 옆 뿐으로 큰까끔에서 큰길을 꽂고 풍물을 준비하고 있으면 이곳 솔따배기에서 치러 나가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한다.

수척(水尺)마을

골뒤골: 수척마을의 유래에서 소개되었던 석굴이 있는 골짜기로 마을에서는 약 1.5km위치해 있고 이곳에서 여인네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기도를 올리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신원(新院)마을

중상골: 원촌마을 앞 유정 진입로 좌측에는 해산 전기홍 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이 골짜기를 중상골이라 하는데 골 안헤 흡사 스님의 형상을 닮은 중바위가 있어 중상골이라 불렀다 한다.

산직골: 원촌마을에서 유정리를 향햐 원촌교 다리를 건너면 도로 왼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짜기의 형패가 흐트러짐 없이 직선으로 내려와 산직골이라 이름 했다 한다.

동화리

상동(上洞)마을

갈배기: 마을을 끼고 흐르는 작은 하천은 갈배기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로 물의 양을 보아도 골짜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유난히 칡이 많은 계곡이라 칡갈(葛)자를 써 갈배기라 한다.

생이(상여)바위골: 백운천 건너 삼밭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로 생이(상여)를 닮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동(下同)마을

속금산: 각종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봄이면 산 아래부터 기온에 따라 :꽃이 피고 가을이면 산 정상에서부터 단풍이 물들여 내려와 마치 비단으로 묶은 것 같아 보인다 항 속금산이라고 하였다.

장사발자국바위: 반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살마이 걸어간 발자국 같은 문양이 선명하며 발자국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으로 옛날 힘센 장사가 기와바위를 들어다 놓으면서 찍힌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사암리

사암(紗岩)마을

지음평: 마을을 돌아 북서쪽 하천건너에 있으며 밤낮으로 능구렁이가 운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신(林信)마을

고리짝쏘: 상임신 마을 앞 백운천 안에 있으며 주위가 암반으로 형성되어 고리짝 같은 형상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며 깊이 2m, 넓이는 3평정도의 자그마한 쏘이다.

월파들: 상임신 마을과 하임신 마을 중간에 범골산장이 있으며 범골산장 앞들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들의 형태가 반월형이렁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리

유정(柳亭)마을

개정지들: 개가 서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개정지란 설이 있고 정지문을 열어놓았다 하여 개정지들 이라고도 한다.

사치(沙峙)마을

도리산: 마을의 뒤쪽에 있는 산이며 봉우리로 형성된 산이 도래 도래 모여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할미봉: 마을 앞쪽 마주보이는 봉우리로 운봉의 가산마을 뒤쪽에 해당되며 할머니들이 돌을 날라다가 축성했다는 가산산성(사치산성)봉우리의 이름이다.

잿논들: 아실재 밑에 있는 논이라 하여 잿논이라 하였거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워낙 고지대라 논이 귀한 터에 그곳을 잿논들이라 불러왔다.

죽림리

죽림(竹林)마을

질매봉: 와우형국인 동네 뒷산 능산에 있는 봉우리로 소의 등에 짐을 싣는 질매와 같은 모양을 이루어 질매봉이라 한다.

닷마지기쏘: 하평마을 닷 마지기소 있었는데, 닷 마지기 배미 너머에 있기도 하였고 쏘가 넓기도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죽산리

죽산(竹山)마을

음지골: 예심이의 위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이 깊으며 남쪽의 비교적 높은 능선 때문에 임조량이 적어 음지골이라 불린다.

머리엊은바위: 죽산 마을에서 세부리들로 오르다 보면 국도 옆 왼쪽 산기슭에 큼직한 바위가 눈에 뛴다. 여인이 머리를 올린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명 각시바위라고도 한다.

대성방(大聖房)마을

구락골: 마을에서 하천을 따라 마을뒤쪽으로 중앙 쪽에 있는 골짜기로 폭포가 아홉 개 있다 하여 구락골이라 하였으며 동난 중 피난 때에는 10여 호가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인가는 없고 희미하지만 민가의 터거 남아 있다.

신병암골: 마을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비교적 작은 골짜기이나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병목처럼 입구보다 안쪽이 더 넓은 골짜기라 불린 이름이다.

장가말: 구락골과 신병암골 사이의 골짜기로 숲이 무성하여 이곳에서는 숯을 굽기도 하였고 큰 가마가 있었다고 하여 장가말이라 불렸다.

딱밭골: 마을에서 보면 아래쪽 앞에 있는 골짜기로 한지의 원료인 딱나무(닥나무)가 많이 자생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질기넹기: 마을에서 질기넹기를 넘어 북치재를 통하여 한재로 가던 고개이었으나 지금은 넘는 이도 없고 질기넹기란 이름도 별로 사용하는 이가 없어 잊혀질 듯 한 이름이다.

지지리

지지(知止)마을

개구리봉: 마을밖에 있는 조그마한 동산으로 마을 앞산인 사두혈의 뱀이 개구리를 먹으려고 넘보지만 앞에 냇물이 흘러 잡아먹지 못하고 있다는 풍수지리학적 형국으로 냇물로 인해 마을의 영구함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꽃바위: 지지마을 뒷동산 쪽에 있는 바위로 전설에 의하면 바위 안에 많은 물이 있어 마을에서 마시고 쓰는 음용수가 그 바위 안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으며 그 안에 잉어가 살고 있는데 잉어가 꼬리를 치면 수문이 열려 마을이 물에 잠겨 망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신성시 하던 풍습이 있었다.

광대동(光大洞)마을

월경산: 정상 쪽이 가파른 암반으로 되어 있어 오르기가 힘겨운 산이며 정상에서 동쪽은 함양백전면이고 서쪽은 광대동이다. 멀리서 보기에 빛에 반사되는 암석이 밤이면 유난히도 밝아 흡사 거울 같다 하여 월경산이라 한다.

달떡배미: 광대동마을 북쪽 성천들의 맞은편에 있는 한마지기 배미로 춘궁기 배고프던 시절 달떡장사의 달떡이 너무 먹고 싶어 팔다 남은 달떡과 이 논 한마지기와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이 논에는 달떡배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