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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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정황선생신도비 이미지

정황선생신도비

장수군 산서면 보산로 1500-85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시대 : 조선시대

수량 및 면적 : 1기

소유자(소유단체) : 창원정씨지평공파종중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지정(등록일) : 2004.07.30

관리자(관리) : 창원정씨지평공파종중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무덤가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정황(1512∼1560)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정황은 조선 중종 31년(1536) 친시(親試)에 합격하여 문원부정자(文院副正字)라는 관직에 올랐고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병조형조정랑(兵曹刑曹正郞),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이 되었으며, 1560년 타계 후 숙종 34년(1708)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비의 지대석은 4매를 맞춰 놓았으며, 귀부받침은 1매석인데 전면에는 2칸으로 구획하고, 측면은 3칸으로 구획하여 그 안에 연화 등의 꽃문양을 양각하고 있다. 귀부의 귀두는 비교적 섬세하게 잘 표현되었으며, 등에는 귀갑문이 시문되어 있으나 선명하지는 않다. 비신은 잘 마연되었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이수는 2마리의 반룡이 표현되어 있는데 역시 문양이 선명하지 못하며, 이수 상면에는 비교적 높은 보주장식이 있다. 영조 19년(1743)에 세워진 비석으로서 비문은 권상하가 지었다.

장수양악탑 이미지

장수양악탑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64-7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수량 및 면적 : 1기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지정(등록일) : 1973.06.23

관리자(관리) : 장수군 가야문화팀

전 심방사지에서 이전 복원한 것으로 최근에 완공된 양악댐 바로 아래에 있다. 현재 옥개석의 네 귀퉁이가 거의 파괴되고 탑신부도 마멸 정도가 아주 심한 상태이다. 이 탑의 구조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그보다 폭이 좁은 방형대석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방형의 탑신과 옥개석을 놓아 3층으로 처리하였다. 현재 탑의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안성 강원도 관찰사 고신 왕지 이미지

안성 강원도 관찰사 고신 왕지

주소 : 장수군 산서면 성재길 22-5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수량 및 면적 : 1매

소유자(소유단체) : 안씨문중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국왕문서/ 교령류

지정(등록일) : 1993.08.31

관리자(관리) : 안씨문중대표

왕지란 임금의 명령이나 전달할 사항을 적어 해당자에게 전하는 문서로, 이 왕지는 태종 14년(1414)에 당시 청백리로 소문난 천곡 안성(安省,1344∼1421)에게 내린 것이다. 크기는 가로 41.5㎝, 세로 43㎝이다. 안성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우왕 6년(1380)에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학사, 상주판관이 되어 이름을 날렸다. 태조 2년(1393) 청백리로 뽑혔으며, 지보주사, 참지의정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가 죽은 후 장수의 용암서원에 모셔졌으며,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이 왕지는 영조 27년(1752)에 세운 어필각에 보존되고 있다.

신광사 대웅전 이미지

신광사 대웅전

장수군 천천면 신광길 31

문의처 : 신광사 063-353-0598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수량 및 면적 : 1동

소유자(소유단체) : 신광사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지정(등록일) : 1985.08.16

천천면 비룡리 신광마을 서쪽에 있는 것으로 신라 흥덕왕 5년(831) 무량국사가 창건하였고, 조선조 헌종 15년(1849) 당시 장수 현감 조능하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 신광사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맞배 너와 지붕의 대웅전과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 지붕으로 된 명부전이 있다. 이 외에도 대웅전 남쪽에는 정면,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칠성각과 대웅전 정면에는 2동의 요사채가 자리하고 있다.

미륵암석불좌상 이미지

미륵암석불좌상

장수군 산서면 초장길 51-61

종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6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및 면적 : 1구

소유자(소유단체) : 미륵암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지정(등록일) : 2005.12.16

관리자(관리) : 미륵암 063-351-3952

고려 후기의 불상으로 현재 미륵암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미륵암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미륵암 마애불좌상이라고도 한다. 나라의 길흉에 따라 석불의 색이 변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은 화강암에 음각으로 새긴 불상으로, 마모가 심해 확인하기 어렵지만 미륵불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 비례는 얼굴에 비해서 몸이 왜소한 편이다. 머리에는 중앙계주가 있고 눈은 가늘게 뜬 ‘一자’ 모양이다. 입은 꼭 다물었고 백호는 생략되어 있다. 귀는 매우 크고 길어 어깨 부근까지 늘어져 있다. 목은 짧으나 삼도(三道)를 뚜렷하게 표현해 놓았다. 불의는 통견(通肩)이며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있다. 오른손은 위로 들어서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새끼손가락을 펴서 밖을 향하였으며, 왼손은 펴서 무릎에 올려 놓았다. 대좌는 연꽃 모양이며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각각 2겹으로 표현하고 그 바깥에 화염무늬를 새겼다. 전체적인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무형문화재

판소리(심청가) 이미지

판소리(심청가)

장수군 번암면 대성방길68

종목 :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12호

소유자(소유단체) : 유영애판소리전수관 063-353-2248

분류 :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지정(등록일) : 2001.06.15

관리자(관리) : 장수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판소리 " 심청가" 예능보유자인 유영애 명창은 번암면 죽산리 대성방 마을에 위치한 판소리전수관에서 판소리 문화예술을 널리 알리고 있다.

기념물

합미산성 이미지

합미산성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산110-1 번지 일원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

시대 : 삼국시대

수량 및 면적 : 11,015㎡

소유자(소유단체) : 사유지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지정(등록일) : 1985.08.16

관리자(관리) : 장수군수

합미산성은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산110-1번지 일원이며, 금남호남정맥 고봉인 팔공산 (해발1147.6m) 남쪽 능선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430m내외이고 계곡부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으로 할석을 잘 다듬은 견치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합미산성은 후백제 때 성에 주둔한 군사들이 군량미를 모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동안의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가야유물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 쌓아진 시기는 삼국시대 가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성벽은 견고하고 잘 다듬어 졌으며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향후 학술조사 추진을 통하여 금남호남정맥 등산로와 더불어 관광 자원화할 예정이며, 지속적 보존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타루비 이미지

타루비

장수군 천천면 장자울로4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83호

시대 : 조선시대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장수군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지정(등록일) : 1993.08.31

관리자(관리) : 장수군 063-350-2326

장척 마을의 산 기슭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通引: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 숙종 4년(1678) 당시 장수현감을 지내던 조종면은 민정시찰을 나섰다가 이곳 산비탈길을 지나게 되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숲 속에 있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고, 이로인해 현감의 말이 덩달아 놀라 한쪽 발을 잘못 디디게 되어 결국 벼랑 밑으로 떨어져 말과 함께 현감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현감을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되었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에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타루(墮淚:눈물을 흘리다)’라는 두 글자를 쓴 후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장수현감으로 부임해온 최수형이 이 사연을 전해듣고, 주인을 따라 죽은 그 충성스런 의리를 널리 알리고자 비를 세워 ‘타루비’라 이름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비각 안에 모셔둔 이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비몸의 윗변 양 모서리를 비스듬히 잘라 다듬었다. 순조 2년(1802)에 세운 비로, 받침부분이 부러져 다시 보수하였으나 역시 볼품이 없어 1881년에 지방민들의 뜻을 모아 ‘장수 순의리비’를 다시 세워 옆에 함께 모셔두었다. 성이 백씨라고만 전하는 이 통인은 논개, 정경손과 함께 장수지역의 3절(三節:절개를 지킨 3인)로 추대되고 있다. 비각 옆 바위 윗면에는 같은 날 생을 마친 조종면 현감을 기리는 ‘불망비(不忘碑)’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더욱 깊은 감회를 가져다 준다.

장수 삼봉리 가야고분군 이미지

장수 삼봉리 가야고분군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128호

수량 및 면적 : 16,087㎡

소유자(소유단체) : 장수군 외

지정(등록일) : 2013.11.15

관리자(관리) : 장수군수

금남호남정맥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의 정상부와 돌출부 자리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장계면과 계남면 일원에 해당한다. 삼봉리 고분군과 인접하여 월강리‧장계리‧호덕리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으며, 약120여기의 중대형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3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주곽과 부곽이 자리한 전형적인 가야계 석곽묘로 확인되었으며, 내부에서 광구장경호, 기대, 등 가야계토기와 마구류, 무기류, 꺽쇠 등 철제유물과 옥, 금제이식등 최상급 가야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봉수유적, 제철유적, 산성유적 등과 더불어 백두대간 이서지역에서 유일하게 확인되는 강력한 가야세력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적으로 역사‧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백장선생유적

백장선생유적

장수군 장계면 장무로 495-14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101호

시대 : 고려시대

수량 및 면적 : 9,566㎡

소유자(소유단체) : 수원백씨정신제공파대종회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역사사건/ 역사사건

지정(등록일) : 1999.04.23

관리자(관리) : 수원백씨정신제공파대종회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백장 선생의 유적이다. 백장은 정몽주에게 학문을 배워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대제학의 벼슬에 올랐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벼슬을 내렸으나 조선 창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유배되었다. 이 유적에는 선생의 무덤과 1850년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들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가에 세우던 비)가 있고, 1960년에 세워진 사당이 있다.

논개사당 이미지

논개사당

장수군 장수읍 논개사당길41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수량 및 면적 : 28,274㎡

소유자(소유단체) : 장수군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지정(등록일) : 1981.04.1

관리자(관리) : 논개사당 관리사무실 063-350-1637

의암사는 장수현감 정주석이 주논개의 충절을 선양하고 장수 태생임을 기리기 위하여 1846년 논개생장향수명비를 세운 후 1955년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경내에는 생장향수명비각, 기념관, 외삼문, 내삼문, 충의문, 영정각이 차례로 있다. 매년 음력 9월3일 이 곳에서 제례를 지내며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화재자료

홍학당 이미지
홍학당 이미지
홍학당 이미지

홍학당

장수군 계남면 유천길 40-1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7호

시대 : 조선시대

수량 및 면적 : 1곽

소유자(소유단체) : 한귀동 외2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지정(등록일) : 1999.07.09

관리자(관리) : 한귀동 외2

조선조 선조 30년(1597) 당시 이 지방에 살고 있던 연안유씨, 충주박씨, 전주최씨, 전주박씨, 동래정씨, 금계한씨, 안음서문씨, 청주한씨 등 11 성씨가 모여 자녀교육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이 건물이 계남면사 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지금의 계남초등학교의 전신인 계남보통학교가 이 곳에서 개교 하였는데, 이 때에는 학교의 교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학으로서는 전국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화산사 이미지
화산사 이미지
화산사 이미지
화산사 이미지

화산사

장수군 계남면 화산길 24-21

종목 : 지방문화재자료 제34호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박대식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박대식

화산사는 사람들의 절의와 우국충절을 보인 선현들을 선양하고자 전국 각처 유림의 호응을 얻어 1961년 창건되었다. 이 사우는 화산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300m정도 떨어진 능선의 서쪽 사면에 있다. 진덕문을 들어서면 정면 4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화산사가 있다. 이 화산사에는 파은 박수기, 문간공 눌재 박상, 충암 김정, 안재 박지견, 문충공 사암 박순, 육류정 박지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침령산성 이미지
침령산성 이미지
침령산성 이미지

침령산성

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1090-1번지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6호

시대 : 삼국시대

수량 및 면적 : 17,512 (보호구역29,150)

소유자(소유단체) : 이찬오 외

분류 : 유적건조물/ 정치국방/ 성/ 성곽

지정(등록일) : 2000.12.29

관리자(관리) : 장수군

이 산성은 삼국시대 가야세력이 처음 축성(築成)하여 후백제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구조는 포곡식으로 정상 주변으로 둘러싸고 있다. 성의 길이는 상부를 기준으로 약 530m이다. 현재 잘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6m 내외이다. 성내 주요시설은 북문지(北門址)치성(雉城) 집수정(集水井)등이 있으며 망대(望臺)로 추정되는 시설도 있다.

창계서원 이미지
창계서원 이미지
창계서원 이미지

창계서원

장수군 장수읍 양선길 33-6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6호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장수황씨 중종, 황용근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장수군수

창계서원은 처음엔 숙종 21년(1695년)에 방촌(庬村) 황희정승을 배향하기 위해 창계사(滄溪祠)로 창건되었다가 순조 15년(1815년)에 중건하여 창계서원으로 확대 복설 되었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전국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가 1958년에 복설 되었다. 현재 이 서원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창계사가 있고 창계사 바로 앞에는 신문(神門) 1칸이 있고 이 신문 바로 앞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상현재(尙賢齋)가 있고 상현재 앞 서쪽에 묘정비가 있다. 창계사 안에는 방촌 황희정승을 주벽으로 5명의 선현들의 위폐가 봉안되고 있다.

정층복비 이미지

정충복비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1-14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수량 및 면적 : 1기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지정(등록일) : 1985.08.16

관리자(관리) : 장수향교 관리사무실 063-353-2540

장수읍의 향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조선 시대 중기 사람인 정경손의 의로운 뜻을 기리고 있다. 정유재란 당시 향교 내의 문묘(文廟)를 지키고 있었는데, 왜적의 한 부대가 이곳 장수지역에 침입하여 문묘에까지 이르자, 문을 굳게 닫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하기를,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 하였다. 이러한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복한 왜적들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이라 쓴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로인해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지역의 향교들에 비해 이곳만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의로운 기개를 거룩히 여겨 이 자리에 비를 세워 두었다,비각 안에 있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헌종 12년(1846)에 세웠다.

정상윤가옥 이미지
정상윤가옥 이미지
정상윤가옥 이미지

정상윤가옥

장수군 산서면 서원길8

종목 : 도민속자료 제119호

수량 및 면적 : 일곽

소유자(소유단체) : 정상윤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정상윤

농촌 부호의 가옥으로 1856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안채, 사랑채, 곡간채, 대문, 중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비교적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서 당시의 건축상을 연구하는데 값진 자료이다.

절렬양정씨지려 이미지
절렬양정씨지려 이미지
절렬양정씨지려 이미지

절렬양정씨지려

장수군 산서면 하월리 429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1호

시대 : 조선시대

ㅁ량 및 면적 : 1동

소유자(소유단체) : 정종술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지정(등록일) : 2000.11.17

관리자(관리) : 정종술

이 정려각은 절개와 지조를 지킨 두 분 여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조선 경종 3년(1723)에 세우고 순조 19년(1819)에 고친 것이다. 정황(丁煌, 1512∼1560)의 후손들이었던 이분들의 행적은 정려 안에 걸린 현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한 분은 정유재란(1597년) 때 왜적에게 봉변을 당하고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은 남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지조를 지켰다고 한다. 이 정려각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 솜씨가 담겨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 한 칸씩이지만 정면이 더 넓은 편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고 내부는 2칸으로 나누어 두 정려의 정려판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자락정 이미지
자락정 이미지
자락정 이미지

자락정

전북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942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9호

수량 및 면적 : 1동

소유자(소유단체) : 충주박씨감사공파종중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지정(등록일) : 1990.06.30

관리자(관리) : 종중대표

조선 시대 사인 김영호, 감사 박수기 등이 처음 지었으나, 1924년에 양쪽 집안의 후손들이 낡은 것을 고쳐 지었다. 건물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이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 풍천의 맑은 물과 섬과 같이 치솟은 석벽에 정자가 조화되어 가히 제 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월강사 이미지
월강사 이미지
월강사 이미지

월강사

장수군 장계면 도장골길 37-6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31호

수량 및 면적 : 일동 1,101

소유자(소유단체) : 월강사보존위원회, 송자희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지정(등록일) : 1986.09.08

관리자(관리) : 장수군수

1828년 (순조 28년)에 지방 유림의 장계(狀啓)에 의하여 왕의 윤허(允許)로 사당을 세웠다. 고려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정신재(靜愼齋) 백장, 예조판서 퇴휴재(退休齎) 송보산(宋寶山), 이조판서 손재(遜齎) 김남택(金南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 사현(四賢)을 모셨다. 1868년(고종 5년)에 사액서원(賜額書院) 48개를 제외한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되었다가 1948년에 복설(復設)되었고 1974년에 경재(敬齋) 백여옥(白如玉)선생, 퇴거재(退去齎) 김남중(金南重)선생, 삼락당(三樂堂) 송수산(宋壽山)선생을 추향(追享)하였다. 또 한 1592년 임진왜란 때 최경회 장군이 전라도 동북방 방어를 위한 창의소(倡義所)를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조련하던 장대가 있었던 터다.

원흥석불입상 이미지

원흥석불입상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1호

수량 및 면적 : 1구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지정(등록일) : 1985.08.16

관리자(관리) : 원흥사 063-351-3922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 팔공산 기슭에 있는 원흥사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높이 4m의 거대한 석불입상이다. 원래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04년 이 마을에 살던 이처사 부부가 꿈을 꾼 뒤 불상을 만들어 모셨으며, 그 뒤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현재의 원흥사를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살찐 모습이며 눈과 입이 작은 편이나 코는 큰 편이다. 목은 매우 짧게 표현되었으며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분명하지 않다. 신체는 어깨와 하부의 너비가 같아 둔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가슴이 거의 노출되었고, 양 소매와 배아래 쪽으로는 형식적인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손은 양 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으며,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혀 있다. 머리 위에 모자가 얹혀 있었다고 하는 이 불상은 손 모양이 특이하며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어서각 이미지
어서각 이미지

어서각

장수군 번암면 장수로 461-6

종목 : 지방문화재자료 제32호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장종연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장종연

조선 영조가 직접 쓴 글씨가 보존되어 있다. 영조는 즉위한 지 39년 되던 해 동짓날 입직한 조정 대신들에게 흰죽과 꿩고기를 내려주고 대신들과 즐기며 추담 장현경에게 친히 시 한귀절을 하사하셨다. 이때 장현경에게 지어 주었다는 시의 원문을 보면 '칠순영상계말동랍보루장반군신동식 석동 한무루두죽 우금지당가견태일'로 되어 있다. 장현경은 이 어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어서각을 창건하고 여기에 보관하였다.

압계서원 이미지
압계서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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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계서원

장수군 산서면 구암길 77-14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5호

시대 : 조선시대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옥천육씨 덕곡공종중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육종영, 육동수

조선조 정조 13년(1789) 창건되었으나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 1958년 복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는 압계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바로 정면에는 정면 4칸, 측면 3칸 맞배지붕으로 된 성경재가 있다. 이울흥재 뒤에는 솟을대문으로 된 내삼문인 상의문이 있으며, 이 내삼문 안에 정면 2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압계사가 있다.

수열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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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비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 935-4번지

종목 : 지방문화재자료 제40호

수량 및 면적 : 1기

소유자(소유단체) : 장수군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장수군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열녀(烈女)인 해주오씨(海州吳氏)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오씨는 양사순(梁思舜)의 아내로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집에 왜병(倭兵)이 침입(侵入)하여 방에서 배를 짜고 있던 오씨(吳氏) 부인의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였다. 이에 오씨는 왜병(倭兵)이 만진 젖가슴을 부엌칼로 잘라내어 외병에게 던져 자결하였다. 이 같은 오씨(吳氏) 부인(婦人)의 열행(烈行)을 동리(洞里)에 열여(烈女)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수열(樹烈)이라 하고 비석의 이름을 수열평(樹烈坪). 비문은 선조 임금의 손자인 낭선군 (朗善君)이 撰한 (글을 지음) 것이다.
(참고 문헌: 장수지방 금석문화/문화원/1999년)

금남군정충신영정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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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군정충신영정각

전북 장수군 장계면 원금곡길 44-8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3호

시대 : 조선시대

수량 및 면적 : 일원

소유자(소유단체) : 정주석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지정(등록일) : 1984.04.01

관리자(관리) : 정주석

만운 정충신(1576~1636)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정충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미천한 집에서 태어났다. 병조판서 이항복에게 사서를 배웠으며 머리가 총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 장군 아래에서 종군하였고 키가 작으면서도 씩씩하여 덕장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여 1등 공신으로 책정되고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으며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이곳은 후손인 정백흥이 순조 11년(1811)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