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천천면

장판마을 전경 장판마을
운곡마을 전경 운곡마을
신기마을 전경 신기마을
송탄마을 전경 송탄마을
삼고마을 전경 삼고마을
박실마을 전경 박실마을
고금마을 전경 고금마을

남양리

내기마을

주무양지: 안터 서쪽에 양지쪽에 있는 골짜기.승무(僧舞)혈의 명당이 있다함

상투바우: 바위 모양이 상투처럼 생겼다. 전에 천천면장을 지낸 윤창래씨의 부모가 이곳에서 치성으로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윤창래 바위라고도 부른다.

벚나무거리: 상투바위 옆에 있던 벚나무 숲을 가리켜 벚나무 거리라고 함.

괭이바우와 노적봉: 풍수적인 형국에서 오른쪽의 쥐가 동네 앞 노적봉으로 쌀을 훔쳐 먹으러 가는데 왼쪽의 고양이가 지키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둔촌(遯村)마을

둔촌: 옛 지명은 돌메기이다.

국사봉: 동네 뒤편 산인데, 일정 때 왜놈들이 혈을 끊기 위해 말뚝을 박았다고 전해 내려옴.

괴래재: 원래는 교리 재인데 후에 발음이 바뀌어서 그렇다는 이야기기도 있으며, 현재는 통행이 거의 없는 고개이다.

이방(梨防)마을

한덕골: 옛날에는 여기에서 흰 차돌이 많이 나와서 그걸 캐서 나일론의 원료로 일본에 수출했다고 함.

가재발들: 이방교 동쪽에 잇는 작은 들, 지형이 가재발처럼 생겼는데 옛날에는 마을이 있었다고 함.

덕들: 이방 남쪽 번덕에 있는 큰 들로서 이방들 또는 큰들이라고하며 장수지역 최초의 현이었던 우평현의 현 터 자리이기도 함.

봉덕리

검덕(儉德)마을

지사골: 고금과 검덕 사이에 있는 골짜기

고금(鼓琴)마을

감바우: 옥녀봉의 옥녀가 켜는 거문고 줄을 감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옥녀봉: 북서쪽에 잇는 산으로 풍수학상 옥녀탄금혈이라고 함

소고개: 풍수학상 누워 있는 소 모양의 와우혈이라고 함.

독봇들: 고금 남동쪽에 있는 들로서 천천면에서 가장 큰 들이라고 함.

원답(院畓): 조선조 때 송탄리에 있던 송탄 원에 딸린 논이라 함.

삼고리

삼장(三壯)마을

가는골: 새룡골이라고도 하며 산 날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함.

북창터(北倉一): 삼장 동쪽 큰길가에 있는 옛 장수현의 북창 터로 현재 밭이 되어있는데 네 층으로 된 돌탑이 서 있었다고 함.

괴래재: 마을에서 둔촌으로 이어지는 재이며, 원래 교리재인데 괴래재로 발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후창천: 창고 뒤에 있는 하천이라는 뜻이다.

삼장 마을: 이 마을에는 김장자, 박장자, 안장자 삼 거부가 살았던 데서 유래한다고 함.

운곡(雲谷)마을

운곡(雲谷): 구름실 또는 굼실이라 불리던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처음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성씨는 수원 백씨라고 함.

감토봉: 굼실 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형이 감투 모양이라고 한다.

신돌팍: 굼실 동쪽 길가에 있는 넓은 바위로 옆에 큰 소나무가 있어 여름에 이곳에서 짚신을 삼았다 함.

남너리벼리: 멍애보 위에 있는 모롱이.

가잿들: 굼실 북쪽에 있는 들. 옆 산 형국이 가재발 모양으로 되었다 함.

들돌신앙: 운곡마을 입구의 숲에 들돌이 있는데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술을 붓고 뜻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삼장(三壯)마을

협천태씨 세거동각자: 협계태씨의 시조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인데 그 대씨가 후에 태씨로 바뀌었다고 하며 후장천 냇가에는 협천태씨 세거동이라고 큰 글씨로 음각되어있다.

용수암(龍水庵): 용삼이라고도 하며 신광사 쪽 수하 절터 이름

정동(正洞): 중동에 있던 옛 마을. 바람정골이라고도 함

최빈골: 최빈골이란 최빈이란 장사 풍습이 시행되던 골짜기 즉 무덤 골을 의미한다.

입벌린박골: 남달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입 벌린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함.

질마재: 중동 바람정골 북쪽의 재로 소등에 얹는 질마처럼 생긴데서 유래

멍애보: 방애실보 남쪽에 있는데 모양이 멍에와 같이 생겼다 함.

연평리

구신(九新)마을

연평리(延平里): 1914년 평지, 신기, 연화, 부동을 병합하여 연화, 평지에서 따서 연평리라 하였다.

구신(九新): 연화정이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 ‘아홉 정승이 낫다’라는 데서 유래하였고 재궁과 괴개 두 곳의 도요지가 전해 내려옴

괴갯골: 괴변이 잘 일어난다고 하여 혼나 사람들이 피해서 다닌다고 함.

굴고개: 섶 밭들 동쪽에서 오봉리 지내 울로 가는 고개로 굴바우가 있음

말너진바우: 유왕바우 밑 서쪽에 있는 바위로 말이 떨어져 죽었다 한다.

손비빔바우: 영험하다 하여 떡을 해 놓고 손을 비비며 빌었다 함.

천반산: 장수 5대 명산의 하나로서 장수지역의 북방을 수호하는 산이라함

섶밭재: 섶 밭들 서쪽에서 평지로 가는 고개로 옛날에는 섶밭재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서낭당 앞의 당산나무도 고사했다고 한다.

부연(鳧蓮)마을

오리골 부동: 연화리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뒷산 모양이 오리 형국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매코벼루모퉁이: 매 코 벼루가 있는 모롱이

비암날골: 개구석 동쪽 옆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뱀과 같은 날 옆이 됨

넙이산잇재 : 오릿골 동쪽에서 용광리 넙산이로 가는 고개

부수머리재: 부연마을에서 진안 오천리로 이어지는 재

연파정(蓮坡亭): 1854년 단양우씨 문중의 효열 정신을 기리고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

평신마을

괭이 바우: 당평들에 물을 대려고 이리저리 찾던 중 나씨의 꿈에 괭이로 이 바위 밑을 파라고 하는 계시가 있었다 함.

낙회 벼루: 흡때벼루 동쪽 옆에 있는 벼랑

무랑곡(無浪谷): 무랑골 또는 무랭잇골이라고 함

배남너머 갱변: 옆에 있는 들이 배 형국으로 되었는데 그 남쪽 너머 강변임

안석바우: 갈미바우 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위로 물을 안고 있으므로 장마 때는 평지마을이 혜택을 입는다고 함.

삭 바우: 지름바우 북쪽에 있는 삭(삵괭이)처럼 생긴 바위

용의 태기: 옹기 만드는 흙같이 되었는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종석바우: 물이 불어 바위가 물에 잠기면 못 건너가고 물에 떠 보이면 안심하고 건너가므로 물 건너는 종을 잡는다고 함.

해궁벼루: 벼랑 사이가 떴으므로 허공 다리를 놓고 건너다녔다 함.

봉황대(鳳凰臺): 천천면 연평리 신기마을 앞에 있는 암대이다.

호랭이 잣목: 노프묘에 있는 고개로 호랑이를 잡았다 함.

먹재: 중석 광이 있었는데 산출이 잘되어 많은 사람의 생활수단이 되었다 함. 묵치(墨峙)라고도 함

여러니재: 정여립의 피난처로 유명한 천반산 동쪽 안부에 있다. 장수 분지와 장계 분지에서 용담댐을 거쳐 충남 금산군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했던 큰 고갯길이다.

오봉리

신흥(新興)마을

구월봉(九月峯): 아홉 봉우리가 솟아 있어서 구월봉이라고 한다.

모정 숲: 70년 전 처음 모정 자리에 심었던 서어나무가 고목이 돼서 죽은 뒤 괴목나무로 수종을 갱신했는데 그게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쌍암(雙岩)마을

쌍암:앞 개울가에 감사 바위와 병사바위의 두 바위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구암대(龜岩臺): 천연대라고도 하며, 감사바우 위에 있는 정자이다

장구목: 쌍암 동쪽 산에 있는 장구의 목처럼 잘록한 고개

육씨 시혜비: 과거 옥자동에 살던 육씨가 구휼·선덕 했던 것을 기리는 내용

오옥(蜈玉)마을

오옥(蜈玉): 옛 지네울이라 불리던 오공마을에 옥자동을 합쳐서 새로 생긴 마을 이름이다.

무너다리: 지네울 북동쪽에 진안군과 경계에 있는 다리로 문어 다리같이 생긴 긴 돌로 놓았다고 함.

바침골: 양쪽으로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떠받치고 있는 것 같다 함.

옥녀봉(玉女峯): 옥녀가 베를 짜는 형상이라고 하며 실제로 정상에 올라가 보면 베를 물에 담그는데 필요한 작은 연못도 있다고 한다.

여수 바위와 매산 바위: 여수 바위는 전쟁 때 피난처로 유명하다고 하고 매산 바위는 집채만 한 크기로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형태로 되어있다.

학대: 보성인 운포 오덕렴공이 동지 5인과 함께 소요하던 곳으로 옥동유거라는 제명의 각자가 있다. 후방에 봉대 구암이 있으며 인근에 용소, 기린항 등이 자리하고 있다.

비룡리

중상(中上)마을

상신: 옛날 상리(上里), 상와룡(上臥龍), 상배룡이, 상용동(上龍洞)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중신: 중리(中里), 중와룡, 중배룡이, 중용동의 이름으로 불렸다 함.

까막골: 신광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지형이 까마귀머리처럼 생겼다 함.

시루봉: 신광 북쪽에 있는 산으로서 공식 명칭은 덕태산이라고 함.

홍두괘치(洪斗괘峙): 장수 천천면 와룡리와 진안 백운면 백암리를 서로 이어주는 고개

외기재: 오계재라고도 하며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사람들이 오고 가던 고갯길.

하신(下新)마을

하신(下新)마을: 하배룡이, 하리, 하와룡(下臥龍), 하룡동(下龍洞)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원래의 하리마을과 신광사가 소재한 신광마을을 합쳐 이루어진 마을 이름이다.

문텅골: 산줄기가 내려오다가 뭉텅뭉텅 솟아 있다 함.

정거리: 시암걸땀이라고도 하며 옛날 마을 터.

하릿고개: 하리 동쪽에서 장판리를 거쳐 장수 쪽으로 장보러 다니던 길

풋죽배미: 대동다리걸 서쪽에 있는 논인데 주벅배미라고도 함

용광리

광산(廣山)마을

광산마을: 옛날부터 넓산이 마을이라고 불렸다 하고 엄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는데 그 후 제주 고씨가 들어와 살게 되었고 현재는 고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고기(古基): 낡은 터라고 불리는 옛 마을 터.

누암(樓岩): 다락바우라고도 하며, 용바우 동쪽 냇가에 있는 바위로 다락과 같이 높다랗게 솟아 있음.

한싯골(한싯동, 황솟골): 넙산이 북동쪽 산골에 있는 마을이면서 지형이 누운 소와같다함

용신(龍新)마을

십상암(十上岩): 어떤 도사가 구룡농주(九龍弄珠)라는 명당을 찾으려고 열 번 올라갔다 함.

용바우(용암): 날이 가물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함.

주먹봉: 두리봉 또는 중학봉(中鶴峯)이라고도 함.

마드래기산: 아홉 마리의 용이 구슬을 꽨다는 뜻의 구룡용지의 전설이 전해오는 명당이 있다고 알려진 마을의 산

월곡리

박곡(朴谷)마을

박곡(朴谷): 박곡이라는 지명의 연원은 파은(波隱) 박수기(朴秀基) 선생으로부터 비롯된다.

반월(半月)마을

죽전동(竹田洞): 댓골을 이름

지치목: 미꼬리밧골 북쪽에 있는 고개

보팟재: 계남면 난평으로 이어지는 재, 마을에서 장계중학교로 다닐 때 쓰이던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장판리

장척(壯尺)마을

가운데땀: 장자올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숲이 무성해 나무를 치고 집을 지었다 함.

왕이봉: 왕의 귀처럼 생겼다 해서 왕이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님쏘: 조선조 제19대 숙종 4년(1678)에 장수 현감 조종면(趙宗冕)이 쏘 위의 벼랑을 지나다 빠져 죽었다 함.

장자올(장척): 장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오계재(五溪재): 장자올 남서쪽에 있는 고개, 오계치(五溪峙)라고도 함.

춘송리

송탄(松灘)마을

송탄(松灘):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낙향한 장응두 선생의 호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천천은 물이 맑고 수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치가 좋아 송탄어적(송탄어적)이라고 해서 장수팔경중의 하나이다

송탄삼거리(松灘三巨里): 송탄 서쪽에 있는 마을 전주, 장수, 장계로 통하는 세 갈림길이 있음, 현감 권설(權卨), 이의성(李義聲), 김영문(金永文)의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와 진사 김한철(金漢哲)의 적덕비(積德碑)가 있었음.

전짐바우(천잠바우): 천잠암(天蠶岩)이라고도 하며 조선조 때 송탄(송탄) 장응두(장응두)가 아버지 병에 누에를 먹여야 낫는다는 의원의 말에 겨울철이므로 구할 길이 없어 이곳에 이르러 소리쳐 울고 나니 갑자기 누에 두 마리가 나타나므로 잡아 드렸다 하는데 하늘에서 그의 효성에 감동하여 준 누에라 한다.

가잿들: 노루목, 송탄, 봉골 앞에 있는 들

천잠대(天蠶臺): 누에는 고래로 하늘에서 내려준 벌레라고 하여 잠(蠶)이라고 쓰는데 잠작의 풍년을 위해 천제를 올렸는데 그 제사를 모신곳이 천잠대이다.

장양(獐陽)마을

장양(獐陽): 노루목이라고 불리던 장향과 양명동의 한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얼른 보아도 노루가 다니는 길목을 연상시킨다.

방어재: 방어령(防御嶺), 방애재, 벙어재, 침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노루목 남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조신(鳥新)마을

조신: 조치는 새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형국이라고 붙여진 지명인데 옛날에는 새재마을이라 부르던 조치(鳥峙)와 조치 웃담에 새로 생긴 마을 신촌(新村)이 합쳐진 이름이다.

검장덜리: 조신마을에 있는 버덩

새재: 조신마을 서쪽에 있는 고개로 조치(鳥峙)라고도 한다.

방곡재: 원래 밤골재였는데, 방곡재로 잘못 불려 굳어졌다. 전주 유씨 족보에도 밤골재 즉 율치(栗峙)라고 기록되어있다고 함.

춘동(春洞)마을

봉골: 비봉귀소물형(飛鳳歸巢物形)으로 봉황이 봄이면 반드시 다녀간다고 한다. 이 마을을 흔히 봉골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봄이 빨리 찾아온다고 하여 봄 골인데 봉골은 봄 골의 변형된 것이라고 함.

매봉 봉수(烽燧): 매봉 정상부에는 불과 연기로 신호를 주고받던 봉수가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 봉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구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매봉에서 남동쪽으로 약 4㎞에는 월곡리 봉수가 자리하고 있다.

백자요지(白磁窯址): 봄골 마을 남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900m가량 가다 보면 장터배기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곳곳에 백자편들이 산재되어 있으며 이곳을 가르켜 점골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백자 가마가 있었던 곳으로 판단된다.

청석골: 봉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청석동(靑石洞)이라고도 함.

고래골: 고래불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