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립국악원 교재총서 Ⅶ 좌도풍물 교재 전라북도립국악원
목차·1 목 차 * 책머리에 3 * 일러두기(범례) .5 1. 풍물굿의 개요 7 1. 풍물굿 용어에 대한 검토 7 2. 풍물굿의 기원과 변천과정 8 1) 축원형태 8 2) 노작형태 9 3) 걸립형태 9 4) 연예형태 10 3. 풍물굿의 지역성과 호남 좌· 우도 풍물굿의 특성 10 1) 지역에 따른 풍물굿의 특성 10 2) 호남 좌 · 우도 풍물굿의 특성 11 4. 풍물굿의 편성 12 1) 악기 편성 12 2) 치배의 역할과 복색 15 5. 진풀이 20 11. 좌도 풍물굿 가락보 29 1 기초과정 1. 굿내는 가락 .29
2.좌도풍물 교재 2. 외마치 질굿 36 3. 채굿 41 1) 일채 41 2) 이채 46 3) 삼채 51 4) 사채 55 5) 오채 61 6) 육채 67 7) 칠채 73 2 연구과정 1. 호허굿 79 2. 풍류굿 3 전문과정 1. 가진영산 96 2. 재능기영산
책머리에 ·3 * 책머리에 풍물굿은 한민족이 낳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타악 연주음악이며, 오늘날 행해 지는 가장 보편적이자 대표적인 공연예술이다. 풍물굿은 타악기인 '풍물'의 기악연 주를 공연의 주된 악기로 하여, 여기에다가 무용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 유희( 戴)적인 요소, 제의(주) 요소 등이 통합된, 매우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공연예 술이다. 풍물굿은 본래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적 놀이이자, 농경사회에서 노동의 고 달픔과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집단의식에서 싹튼 예술양식이다. 풍물굿의 악기편성은 리듬의 주된 흐름을 이끌거나 지휘자 역할을 하는 꽹과리와, 가죽으로 만든 장고, 북, 소고, 그리고 놋쇠로 둥글게 만든 징으로 편성되며, 여기에 태평소라는 선율악기가 연주되기도 한다. 풍물굿은 주로 한반도 이남지역에서 널리 연주되었으며, 지역마다 가락의 리듬과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매우 다양한 음악이 전승되고 있다. 최근에는 풍 물굿에서 연주되는 4개의 타악기로 풍물의 리듬을 재구성하여 실내 연주용으로 무 대음악화한 '사물놀이'라고 부르는 공연형식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 정받고 있다. 본 「좌도풍물」 교재는 현재 도립국악원 좌도풍물반에서 「임실필봉 풍물굿」에 기초하여 지도와 연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임실필봉 풍물굿 가락 위주로 편 찬하였다. 임실 필봉굿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 전승되는 좌도 풍물굿을 말한다. 필봉리 는 본디 마을 단위의 마당밟이, 당산굿 등이 소박하게 전승되어 왔으나 판굿과 외 지의 걸궁굿같은 수준 높은 풍물굿의 모습을 갖춘 것은 강진면 출생의 유명한 상쇠 박학삼을 초청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박학삼의 대를 이은 송주호에 의해서 전승되 던 필봉굿은 1970년대부터 쇠퇴의 길을 걷다가 양순용이 대를 이어 상쇠를 맡으면 서부터 좌도굿의 복원과 함께 활발한 전수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필봉굿은 1989년 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1-마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장고 박형래와 함께 무형 문화재 기능보유자 양순용 상쇠는 1995년도에 별세하였다. 현재 임실 필봉굿은 마 을 입구에 전수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필봉굿보존회에 의해서 가장 활발한 전수활 동이 전개되고 있다. 무릇 모든 전통예술은 계보(系譜)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 즉 특정한 형태의 예 술이 그것을 이어받은 다음 사람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전승될 때 계보(또는 바디) 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는 개인적 뿐만 아니라 집단적 전승물 또한 마찬가 지이다. 그러나 계보에 의한 전승은 기본적으로 전통성과 순수성 유지를 골간으로 하지만 전승과정에서 대를 잇는 사람에 의해서 첨삭(列) 변이(變異)가 자연스럽 게 이루어진다. 이는 전통예술의 보편적 속성이 문자나 악보에 의해서 전승되는 것 이 아니라 구비전승과 구전심수로 계승되기 때문이다.
4 ·좌도풍물 교재 따라서 전통예술의 계승에 있어서 개인적 사사와 해석, 또는 취향에 의해서 상이 한 견해가 다소 있을 수 있다. 본 「 「 도도 문 물」 교재를 편찬함에 있어서도 이렇듯 특정 가락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견해가 대두될 경우에 본 교재에서는 담당교수의 견해를 수용하여 악보화 작업에 임했다. 금번 교재발간에 있어서 가락의 시연은 물 론 가락보와 구음보 채보과정에서 전일적으로 결합하여 공동작업을 수행해 주신 양 순주 좌도풍물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일러두기·5 * 일러두기 1) 장 구 리듬보 구음보 구음 연 주 법 1 。 : 덩 궁편과 채편을 동시에 친다. ^ 2 % 응 더 궁편과 채편을 동시에 작게 한다. レ . 3 궁 궁편만 친다. 4 ○ 구 궁편만 작게 친다. 5 Q 따 채편만 친다. 6 . 다 채편만 작게 친다. (8) 7 ° 기(그) 열채 끝으로 가볍게 친다. 8 ま ● 딱 변죽을 친다. 9 ま 읏 장구를 치지 않고 쉰다. ま 10 금 1 닥 열채를 크게 치되 소리를 잡는다. 2) 꽹과리 리듬보 구음보 구음 연 주 법 꽹과리를 치고 막지않되 여운은 길게두거나 1 갠, 갱 크게 친다. 꽹과리를 치고 막지 않되 여운을 짧게두거나 2 () 개, 깨 작게 친다. 3 () 지 꽹과리를 치고 바로 막는다. 4 ↓() 듯,뜻,갯 꽹과리를 막고 친다. 5 き 은 꽹과리를 치지 않고 울리게 그냥 둔다. 꽹과리를 두 번 연이어 치는데 두 번째 6 8 기리 박에서 막는다. 7 2丁(21) ◎ 뜨듯 꽹과리를 막고 두 번연이어 친다. 리듬보의 경우 박의 길이는 실제 쓰인 표기와 다를 수 있음
I. 풍물굿의 개요·7 | · 풍물굿의 개요1) 1. 풍물굿 용어에 대한 검토 풍물굿은 지금까지 흔히 농악(農業)으로 불려왔다. 농악이라는 용어는 그동안 아 무런 고민없이 풍물굿의 총칭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이 용어가 일제시대 식민통치의 잔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80년대 이후부터 명칭에 대한 재정립 운동이 일기 시 작하였다. 농악이라는 용어가 문헌에 나타난 것은 조선총독부에서 1931년에 발행한 「조선 의 연중행사」 로 알려져 있다. ユ 책의 저자인 일본인 오청(吳晴)은 6월의 행사를 소개하면서 "이것을 속칭 농부놀이 혹은 농악이라고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당 시에 속칭으로 사용된 용어가 그 이후로 통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ユ 당시 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로도 농악이라는 용어보다 ユ 쓰임새와 장소, 그리고 지역 에 따라 '매구친다' '풍물친다' '굿친다' '풍장친다' '걸궁친다' '두레친다' 등의 호칭으 로 아주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듯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 은 풍물굿이 연행되는 목적과 행위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음력 섣달 그믐날에 송구영신(送훕迎新)을 바라면서 잡귀와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서 집집마다 들러 고사굿을 치는 풍물굿을 '매구굿' 또는 '지신밟기'라고 하며, 논농 사에서 김매기를 하면서 들노래와 함께 치는 풍물굿을 '두레풍장굿'이라고 하며, 마 을 공동사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면서 치는 풍물굿을 '걸립 굿' 또는 '걸궁굿'이라고 하며, 정초에 마을의 수호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치는 굿을 '당산굿' 또는 '마을굿'이라고 한다. 이렇듯 세시 절기나 또는 특별 사업을 목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사용되는 풍물굿 의 쓰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용어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조사, 정리, 기록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작업은 용어의 통일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일제총독부에 의해서 조사할 당시에도 각기 다른 명칭으로 인해서 매 우 혼란스러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용어 통일의 필요 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일반적으로 '농민들이 치는 음악' 또는 '농민의 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농악'이라 칭하였던 것이고, 그 용어가 아무런 검증없이 지속되어 지금까지 총칭으로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농악'이라는 명칭은 역사적 정통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풍물굿의 민속문화적 정체성을 함축하는 용어로도 합당하지 않다. 따 라서 단지 농민의 음악이라는 한정적 의미를 극복하면서 전통적인 공동체사회의 생 1) 이 교재의 1장은 본격적인 연구서라기 보다 풍물굿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집필된 개괄적 내용이다. 따라서 본 글에 인용된 자료의 출처에 관해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주로 처리 하지 않았다. 다만 글의 말미에 <참고문헌>을 통해서 도움받은 자료를 밝히고자 한다.
8 · 좌도풍물 교재 활문화 및 민속예술 본연의 성격을 포괄해내는 용어로 '풍물굿'이라는 명칭을 대안 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풍물굿'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악기를 지 칭하는 '풍물'과, 좁게는 제의(주) 차원에서부터 넓게는 연주나 행위를 표현하는 '굿'의 합성어로써, 농악의 무개념적이고 한정적 의미를 뛰어넘는 포괄적 개념을 담 고 있다. 한편 전북도립국악원도 이러한 논의를 충분히 수렴하여, 그동안 농악반으로만 운 영되던 연수과목이 지난 99년도에 분반되면서 명칭 또한 "우도풍물반"과 "좌도풍물 반"으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 풍물굿의 기원과 변천과정 풍물굿의 기원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했을 것이라고 본다. 비록 단편적인 기록이지만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三國誌)」 의 「위지 동이전( 誌 東夷傳)」 <마한조(馬韓條)>에 의하면 마한에서는 5월 파종 때, 그리고 10월 추 수를 마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남녀가 무리지어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수십 명씩 줄을 지어 땅을 구르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고, 또 손과 발이 서로 장단을 맞추며 놀았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농사를 생업으로 하게된 이래, 5월 파종과 10월 추수에 즈음하여 하늘에 축원과 감사를 올리기 위해서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할때 수반되는 가무연희(歌舞演劇) 과정에서 풍물이 시작되지 않았는가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시의 풍물형태는 악기가 구비된 것이 아니고 무용을 위주로 하되, 다 만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가장 원초적인 악기라고 할 수 있는 북을 두드리며 "답지 저항(踏地低気)"한 형태였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원시적인 축원의식의 가무형태에서 점차로 다른 타악기가 첨가하여 오늘날의 풍물굿이 파생되고 전래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풍물굿의 기원에 관해서는 농사안택축원실(農事宅祝願說) 군악설(軍 樂說). 불교관계설(佛教係說) 등이 혼재하고 있지만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단정적 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시대에 따라 풍물굿의 형태가 변천하여 왔는데 축원형 태(祝願形態), 노작형태(勞作形態), 걸립형태(乞 연예형태(演藝形態)가 그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가 각각 독립적으로 변천된 것은 아니고, 다만 시대에 따 라 상대적으로 어느 한가지의 형태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1) 축원형태 축원형태 풍물굿은 위에서 살펴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서처럼 집단적 으로 축원을 올리기 위하여 베푸는 주술적, 종교적 의식의 성격을 말한다. 이러한
I. 풍물굿의 개요·9 축원형태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 한 매귀굿,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택을 축원하는 마을굿(당산굿), 집을 새로 마련하고 집안의 가장 으뜸신으로 여기는 성주굿, 가뭄이 극심하여 농작물에 피해 가 있을 때 드리는 기우제굿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당산굿을 예로들면 먼저 당집에 가서 당산제를 지내고, 마을 공동우물에서 샘굿을 비롯해서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대문에 들어가면서 치는 문굿, 가신중 으뜸신께 올리 는 성주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장독대에서 치는 천륭굿, 곡간에서 치는 광굿 등 각 처소를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등 축원형태가 풍물굿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2) 노작형태 노작형태의 풍물굿은 농사일을 하는 과정, 즉 모심기와 논매기, 풀베기, 타작 등의 순차에 따라 농민의 피로를 덜어주고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과 함께 치 는 풍물굿으로써 두레굿, 또는 두레풍장굿을 말한다. 이때는 농사일을 하면서 부르 는 노래인 노동요와 함께 풍물굿을 치기도 한다. 두레굿은 노동과정 이외에 칠월 칠석이나 백중날에 마을 잔치를 베푸는 '술메이'에서도 행한다. 노작형태 풍물굿의 예를 살펴보면, 지역에 따라서 모심을 때는 모심는 소리를 하 는데 이때 '못방구'라는 북을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리고 논매기 때 본격적인 두 레굿이 펼쳐지는데 편성악기는 꽹과리, 장고, 북, 징이며, 각각 1인씩 단촐하게 구성 된다. 마을기를 앞세우고 마을에서 작업할 논으로 향하여 가는 과정에서 두레굿을 치고, 논에서 풀을 맬 때는 풍물패도 논에 들어가 논매는 소리와 함께 역시 두레풍 장굿을 친다. 또한 작업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논주인을 사다리나 황소에 태우고 돌아오면서 두레굿을 치기도 한다. 3) 걸립형태 걸립형태는 마을이나 장마당을 돌며 걸립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전문적인 풍물패를 말한다. 걸립패에는 낭걸립패와 절걸립패가 있다. 낭걸립패는 서낭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고사굿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걷는 형태 이다. 낭걸립패는 절걸립패와 구별지어 부르는 말로 서낭을 받고 다니는 풍물패에 서 유래되었으며, 풍물잽이들이 직접 걸립패를 꾸며 정초나 혹은 아무 때나 마을과 장마당을 돌며 집집이 걸립을 한다. 걸립하는 의식은 동제(洞祭)의 집돌이와 유사하 다. 먼저 마을의 당에 가서 신대를 세우고 무가나 무악의 도움으로 서낭을 받는다. 이들은 신이 내린 신대를 들고 집집이 돌면서 집돌이를 하는데 각각의 집에 가서 고사를 지내주고 돈과 곡식을 걷는다. 절절립태는 사찰의 건립이나 중창을 위하여 모금하는 걸립패로 사찰의 탁발승들
10 · 좌도풍물 교재 만 조직되는 경우와, 다른데서 따로 걸립패를 사서 걸립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 조 선시대 불교가 정책에 의해서 쇠퇴함에 따라 재원의 빈곤으로 사찰의 운영난이 심 각해지자 고륙지책으로 화주승을 비롯한 수십명이 사찰의 굿중패를 만들어 탁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탁발승들이 법고, 바라 같은 것을 치고 나비춤, 법고춤 과 같은 춤을 추며 고사염불을 부르고 걸립다니는 절걸립패도 있고, 또 여기에 여 러 놀이꾼을 데리고 다니던 절걸립패도 있었다고 한다. 4) 연예형태 연예형태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풍물패가 관람자에게 판굿과 연희를 중심으로 보여주기 위한 풍물굿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무대예술적 성격의 풍물굿을 말하 는데, 이는 앞에서 살펴본 축원형태나 노작형태, 또는 걸립형태와 전혀 다른 성격으 로의 변천이다. 따라서 연예형태의 풍물굿은 그 형태의 다양성에 따라 다채로운 의상을 갖추기도 하고, 여러 풍물과 잡색이 따르며, 군중(軍中) 진풀이를 방불케하고, 도둑잽이굿과 같은 연희적 요소를 강화하기도 하여, 궁극적으로는 무대화된 풍물굿을 통해서 흥 행과 관련을 맺게된다. 다시말하면 공연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잡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 풍물굿의 지역성과 호남 좌· 우도 풍물굿의 특성 1) 지역에 따른 풍물굿의 특성2) 풍물굿은 마을을 단위로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전승되어 왔다. 따라서 그 지역의 자연지리적 특성, 생활환경과 문화적 색채를 비롯한 인문환경적 영향을 강하게 받 기 때문에 지역마다 쇳가락이나 악기편성, 연행, 춤사위, 잡색놀이 등이 독특한 특 색을 지니게 된다. 경기지역의 풍물굿은 쇠가락은 길군악 칠채, 굿거리, 덩덕궁이, 마당삼채, 잦은가 락 등이 주로 쓰이는데, 길군악 칠채는 경기지역에서 가장 특징적이 가락이다. 굿거 리, 덩덕궁이, 잦은가락 등 느리고 빠른 가락을 고르게 쓰며 잡다한 여러 가락이 없 으으로 경기도 쇠가락은 가림새가 분명하여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진법에는 상쇠놀 2) 풍물굿의 지역적 특징에 대한 개관은 김택규의 「농악의 지역성」 (「한국의 농악」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1994)에 관한 글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