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문화 제2호

長小文化 제2집 長水文化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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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산 의병장 내외분 묘소 (번암면 유정리 입구 소재) 慶州金先生束臣之莱 三南義兵大将酒店 김동신 의병장 묘 (장계면 명덕리 지보 소재) 2

차 례 발간사/二輯을 펴내면서 /김진영/장수문화원장·4 축간사/김상두/장수군수·6 축간사/최봉철/장수군의회의장·7 특집 1 구한말 의병 활동과 장수 김동신(金東臣)의 의병 활동(義兵活動) /오병무·11 전기홍(全基払)의 의병 활동(義兵活動)/오병무·41 특집 2 의병의 진중일기 전해산(全海山)의 진중일기(陣中日記) 번역문 · 81 전해산(全海山)의 진중일기(陣中日記) 원문·229 특집 3 일본 답사기(踏査記) 일본(日本) 영언산(英彦山) 보수원(宝壽院) /김진영· 291 3

<<長水文化>> 二輯을 펴내면서 장수문화원장 김진영 《長水文化》 창간호를 上梓한지 서너 해가 지났습 니다. 二輯이 늦어진 이유를 굳이 변명한다면 장수 삼절의 主壁으로 받드는 의안 부논개 사적 정립을 위한 학술회의 및 논문집 <論介의 生涯와 忠烈》, 의암에 관한 사료를 집대성한 <論介實記>, 소설 형식으로 엮은 《이애미 논개》, 장수인의 자존심을 일깨워준 <長水의 表象 〔二德、 三節, 五義〕》, 이 지역 漢詩 동호인들의 시집 《碧溪詩稿》 등의 책자를 발간하다 보니 이제 겨우 二輯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에는 장수 오의의 한 분인 全基泓(海山) 대동의병장의 의병 활동 약사와 더불어 소중하기 이를데 없는 장군의 친필 陣中日記를 게재함으로써 識見, 達筆, 丹忠, 用兵術 등 인격을 두루 갖춘 장군의 眞面目을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三南都元帥、 三南義兵大將, 金承旨 등으로 호칭 되었던 金東臣 장군의 의병 약사를 게재해서 우리 장수와 깊은 緣故 關係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김장군은 충청, 전라, 경상도 지방을 遍歴하면서 의병을 招募하고, 한편으로는 곳곳에 거점 조직인 의소를 정하고 의병 상호간의 유기적인 연락으로 유격전을 펼쳐 왜병들에게 치명타를 가해서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습니다. 또한 김장군은 덕유산, 장안산 등 장수 관내 여러 마을에 유숙하면서 의병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덕유산 자락에 있는 장계면 명덕리 지보 마을 金永善川 댁에서 여러 차례 유숙하면서 노독을 풀 때 지성으로 시중을 들어준 그 마을 박씨 규수와 청혼하여 아내로 삼고 가족을 그 곳에 둔 채 삼남 지방을 종횡무진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 고향인 회덕군 탄동(대전 광역시)에서 왜경에 체포되어 통한의 생을 마쳤습니다. 묘소는 후예들이 살고 있는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지보 마을 소비재(小飛時)에 모셔져 있습니다. 4

다음은 일본인 우에쓰까(노)씨가 의암 주논개의 영정과 묘비를 日本 福岡縣 田川市 英彥山 자락에 조성한 宝壽院에 모시고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 진상을 살피기 위해 현지를 답사한 기행문을 실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숭앙하고 있거나 숭앙해야 할 선열들의 행적에 대해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분들을 소개함으로써 선열에 대한 숭 모사상을 고취하고자 함이 二輯 간행의 所以입니다. 二輯 출간에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신 김상두 군수님, 최봉철 군의회 의장님, 오병무 교 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998년 9월 일

축간사 장수군수 김상두 경제 한파로 인해 민심이 예전같지 않은 때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김동신 장군의 뛰어난 의병 활동 내용을 발굴하는 등 군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 기에 충분한 「장수문화」 2집을 발간한데 대하여 진심 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장수문화원에서는 논개님에 대한 역사를 재정립하고 조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논개실기」라는 역사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고,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문화재 등을 발굴하여 군민이 접근하기 쉬운 화보로 「장수군문화재총람」을 제작하고 있는 등 장수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으로 정리하기 위해 땀흘리는 모습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94년 「장수문화」가 창간으로 출발할 때, 일궈냈던 장수 인물의 고찰은 장수 문화 발전에 촉매제가 되어 인물 10분을 2덕 3절 5의로 정립 군민의 마음 밭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제2집에서 역사의 인물을 조명하는 등 어렵고 힘든 작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군민의 마음을 하나로 하는 일을 해냈기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장수의 주인은 군민입니다. 군민이 주인됨은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 또한 군민의 몫이기에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풍물, 사진, 문학, 무용, 그림, 서예 등각 분야마다 새롭게 단장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때 군민의 긍지와 보람은 일백배 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으로 그동안 「장수문화」를 집필한 문화원장님과 관계된 분들께 격려를 드리면서 장수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1998년 9월 일 6

祝 刊 辭 장수군의회의장 최봉철 장안산과 덕유산 등 白頭大幹의 정기를 이어받아 내 려온 우리 군은 산자수려하고 인심이 후덕하여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각 지역·마을마다 忠臣烈士가 많이 배출되어 『忠·孝·烈』 뿐만 아니라 '二德·三節·五義'가 있는 자랑스러운 고장입니다. 이렇게 살기 좋고 자랑스러운 우리 고장의 뿌리를 찾아 보존하고 계승, 발 전시켜 나가는 일은 우리 後孫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며, 장수군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북돋우는 뜻있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長水文化院에서 《長水文化》 창간을 비롯해서 <論介의 生涯와 忠烈》 <論論實記>, 《長水의 表象》 등 장수인의 자존심을 일깨워주는 다수의 책을 발간하는데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특히 이번에 발간하게 된 《長水文化》 第2輯은 五義의 한 분인 全基泓(海山) 대동의병장의 <陣中日記>와 三南都元帥·義兵大將으로 호칭되었던 金東臣 장군의 義兵略史를 게재하므로써 우리 고장을 빛낸 얼굴중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들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졌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지역의 文化와 人物을 재조명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길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 관련 사료의 조사 연구 등 길고도 먼길 일 것입니다. 우리 以前에 先祖들로부터 우리가 계승한 自然의 넉넉함과 아름다움과 그 분들이 남기신 業績을 後世에 오는 사람들에게 감소시키지 않고 인계해 주는 것이 우리 時代·우리 世代의 사명으로 알고 文化와 遺産을 더욱 발굴하여 재정립시켜 나가므로써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어깨를 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끝으로 이 책자를 통해서 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고향을 떠나오신 분들에게는 애향심을 북돋우는 총매제가 되고 힘과 지혜를 얻는 소중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長水文化》 第2輯 발간을 하기까지 자료 수집과 집필, 편집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주신 김진영 文化院長님과 會員 여러분들의 노고에 격려와 찬사를 드립니다. 1998년 9월 일 7

구한말 의병활동과 장수

김동신의 의병 활동 김동신(金東臣)의 의병 활동(義兵 活動) 오병무 (순천대 교수) I. 김동신(金東臣)의 출생 김동신은 1872년(고종 9) 12월 26일 충청도 회덕현(德縣) 탄 동면 덕진동(炭洞面 德津洞, 지금 대전시 유성구)에서 태어났다. (회덕현은 1895년 군이 되고 충청남도에 속하였으며 뒤에 대덕군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 대전시에 편입되었다.) 경주 김씨(慶州 金氏)로서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清출)이며 고종때 무과에 승통하여 통 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k)으로 제수되었고 1933년 정월 초 사흘 세상을 떴는데 전북 장수군 계내면 명덕리 지보촌 뒷산 기슭인 소비치(小飛時)에 묘소가 있다. 의병 활동을 하는 동안 김승지로 통했다. 장형 동룡(東龍), 중형 동봉(東鳳), 아우 동린(東舞), 동화(東華) 5형제 중 동봉, 동신, 동린 등 삼형제가 의병을 이끌고 나갔으나 동봉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전한다(대덕군 탄동면 덕진리 金基宗의 증언). 그리고 김동신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의 증손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문집에 "백양산 구암사 절 이름은 증조 추사공이 지었다"고 하였고 또 "내장산 벽련암 편액도 우리 추사공이 쓴 것" 이라 함에서 알 수 있다. 11